"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요?" "샌드위치입니다." 시선은 여전히 보고 있던 서류에 고정한 채, 니콜라스가 짧게 대답했다. 익숙하다는 듯 목 끝까지 채워진 그의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어 내린 엘리제의 손이 멈춘다. 또 보나마나 고작 샌드위치 한쪽 먹었겠군. 이번 흡혈이 끝나고 나면 계약 조항에 삼시세끼 든든하게 먹기를 추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
허, 얼마나 대단한 협력자를 모셔왔나 싶더니. 성당 안 아이들과 웃으며 성경을 읽고 있는 수녀의 모습에 누군가 작게 실소를 터뜨린다. 이내 그 입꼬리가 이죽거리며 피고 있던 담배 연기를 마저 내뱉었다. 성당 입구에서 거리낌 없이 흡연을 할 이가 없을 테니, 아마 이 매캐한 냄새를 맡으면 금방 제가 왔다는 걸 알아차리겠지. 그의 예상대로 아이들을 잠시 다른 ...
아. 또 이 꿈이다. 눈을 뜨자 묘하게 낮아진 시야에 니콜라스는 여느 때처럼 바로 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 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 보글보글 무언가 끓는 소리, 따뜻한 온도. 배고파도 조금만 기다리렴, 니키. 다 됐으니까. 자신이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상냥한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니콜라스는 눈만 깜빡일뿐, 대답을 하지...
저를 데리고 도망쳐줄 수 있나요? 아. 그 한마디에 신부 대기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주머니 안의 묵주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멈췄다. 사실 니콜라스는 오늘이 제일 행복해야 할 날이여야만 하는 신부가 언젠간 이 말을 꺼내리라 생각했었다. 다만 그 시점이 결혼식보다 더 이전에, 드레스를 맞추기 전에…… 어쩌면 그녀가 결혼하게 됐다는 말을 꺼냈을 때였더라면. 이제 와...
길을 잃었소? 광장 한 가운데에 서서 멀뚱히 서있던 남자에게 다정한 목소리가 다가온다. 저절로 시선이 가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여태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였던 허리춤의 검에 손을 올린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아. 순간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러니까, 여긴. "아까부터 여기 계속 서있길래 도움이 필요한가 해서." "……." "음, 이름부터 밝혔어야...
리아 오블렌테는 줄곧 상상해왔다. 만약 자신이 오블렌테 가문의 장녀가 아닌, 장남으로 태어났더라면 이 모든 상황이 바뀌었을까 하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지만 여전히 앞에 보이는 건, 축축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실험실의 내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고, 화를 내던 이들도 지쳤는지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다. 현실적으로 판단한다면 지...
1. 인어가 생겼습니다. 굉장히 뜬금없이 들리시겠지만, 저도 뜬금없게 생긴 거라서요. 글쎄, 의뢰를 해결한 지가 언제인데 계속 돈을 주지 않는 의뢰인을 찾아갔더니 웬 커다란 수조를 보여주지 뭡니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돈보다 훨씬 좋은 거라며 수조를 덮은 천을 벗겨내는데 그곳엔 인어가 있었습니다.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상체만 본다면...
닻을 올려라! 우렁찬 선장의 외침과 함께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다른 선원들도 출항 준비로 분주한 이때, 갑판 위에 덩그러니 밧줄에 묶여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포로라기엔 고위급 간부나 빼어난 미인도 아닌,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브루넷. 배가 점차 움직임에 따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자의 눈이, 지도를 손에 쥐고 바다를 내다보...
우리는 황혼의 오래된 나선, 끝나지 않는 전장 속에 있다. 장 바티스트 플람은 이 말이 종전 후에도 쓰일 걸 예측했을까? 오늘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상담을 하러 온 환자들 차트를 손에 쥔 채, 에런은 습관적으로 옆에 놓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었다. 종전 3년, 대체 무엇이 바뀌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질책하는 제목과 함께 여러 사회적 문제를 늘어놓은 기사는 보기...
[안녕하세요. 역사와 철학 B분반 조별 과제 팀원 전영중이라고 합니다.] [성준수 씨 맞으시죠?] [야.] [평소에 과거에 있었던 일까지 끄집어내는 거에 능력도 있으시고, 욕도 갈수록 현란해지는 게 어디서 계속 배우시나봐요. 자료 조사 하시면 되게 잘할 것 같은데.] [죽을래, 진짜?] [자료 조사 싫으시면 평소에 화내는 발성도 되게 좋으시고, 애인이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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