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중은 성준수와 같이 집에 가는 시간을 좋아한다. 해가 가라앉아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가, 다시금 눈을 깜빡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두워진 바깥을 다섯번 정도 봤을까. 집에 같이 갈래? 어느 때처럼 농구 연습을 끝내고 체육관을 나서려는 순간 준수가 먼저 영중에게 제안했다. 참 이상하지.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서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
그러고 보니, 그대 생일이 언제지? 릭의 물음에 벨져는 짧게 코웃음만 칠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평온하게 묻기엔 썩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눈빛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어쩌면 이대로 안타리우스의 실험체가 되어 당장 벨져 홀든의 생일을 기억하기는커녕, 릭 톰슨의 자아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르...
명심해, 너 같은 남자는 가을을 조심해야 해. 왜? 그야 주변을 둘러봐봐. 바람은 선선하게 불지, 햇볕은 따사하지. 거기다 하늘까지 이렇게 푸른데, 자칭 로맨티스트인 네가. 릭 톰슨은 저절로 떠오르는 목소리를 곱씹으며 저를 지나쳐간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쏟아지던 빗줄기가 서서히 약해졌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
왜 생일인 거 말 안 했어? 에이트의 질문에 에드몬드는 두 눈만 깜빡거렸다. 다짜고짜 손목을 잡고 끌고 오더니 물어보는 게 고작 생일이었나? 답지 않게 하도 진지한 얼굴로 꽉 붙들고 있어서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얼마나 많은 상황을 예측했는데! 에드몬드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그 틈도 못 참겠는 에이트가 재차 물어본다. “왜...
릭 톰슨에게 생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능력이 발현되기 전까지만 해도 생일 날, 무엇을 갖고 싶은지 일 년 내내 상상하는 어린 톰슨이 존재하던 시절도 존재하긴 했다만. 손가락 하나 까닥이면 바로 파리의 에펠탑으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남자를 충족시킬 선물이 과연 어디 있을까? 그랬기에 릭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사유로 동행하게 된 ...
또 벌레 물렸어? 누군가의 말에 일제히 모든 시선이 다이루크의 목덜미로 향한다. 반듯한 사각 반창고가 붙여진 모습이 여름날과는 안 어울리긴 했지만, 다이루크를 오래 봐온 친구들에게는 으레 익숙한 상처였다. 어, 가려워서 잠결에 막 긁다 보니. 다이루크가 살짝 시선을 피하며 손에 든 포도주스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러게, 조심 좀 하라니까. 안 그...
𝗡𝗢𝗧 𝗧𝗛𝗘 𝗠𝗔𝗜𝗡 𝗖𝗛𝗔𝗥𝗔𝗖𝗧𝗘𝗥𝗦 - 𝗯𝗲𝘃 𝗵𝗶𝗹𝗹𝘀 다이루크는 이따금씩 합법이라는 단어가 자신과 같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한다. 아마 마리화나를 합법화함으로써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고 대범함 또한 끝이 없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와 뿌연 연기가 방안에 가득 ...
그러니까, 다이루크 라겐펜더는 제 앞에 놓인 사유서를 보고 도대체 뭐라고 적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은 그가, 무려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에 삼십 분이나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다들 사고라도 난 건 아닌지, 혹은 너무 아파서 연락할 틈도 없는 건지 걱정하던 차에 다이루크는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
오마이걸 - 나의 인형 낡은 다락방에는 퀴퀴한 먼지 냄새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 해준다한들 세월에 잠식된 물건의 냄새만은 지울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건 버려도 상관없다고 얘기했는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다이루크는 왜 자신이 이런 다락방에 발을 들인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기엔 딱히 찾고 싶은 추억의 물건도 없었고, 그저 아델린...
“이거라면 다이루크 어르신이 좋아할 거예요.” 그리 말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쏙 들 법한 브로치를 건네받은 케이아는 말없이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와서 이런 걸 선물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직접 선물까지 준비해준 아델린을 보니 여전히 과거의 사이좋았던 의형제를 떠올리는 걸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
케이아는 이따금씩 잠든 다이루크의 코밑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곤 했다. 곤히 잠든 그 숨결이 살갗을 스쳐 지나가면, 방금 전까지 서로 물고 빨았던 때보다 더 안심이 되는 이유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혈색이 도는 뺨을 쓰다듬는 그 순간이 케이아에겐 무엇보다 고요하고, 성스러웠기에. 매일 신실하게 신을 모시는 수녀의 마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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